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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희 대기자의 말하는 두레박 <16> 삼광사 무원 스님의 통일佛心(불심)

기사일자 : 2015-11-22

  
  천태종단이 지원해 북한 개성에 복원된 천년 고찰 영통사 전경.
- 의천이 천태종 개종한 천년고찰
- 무원스님 10년간 70차례 北 찾아
- 건축자재·예불도구 통큰 지원
 
- '중 선생'이라 부르던 현지 주민
- 나중엔 합장하며 스님이라 불러
- 김정일도 세 차례 현장 둘러봐
 
- "전향적 논의 '종북' 색안경 안돼
- 교류 늘려야  닫힌 문 열릴 것"
 
군사분계선을 넘는다는 것은 긴장되면서도 무서운 일이다. 북한으로 간다는 것, 그것은 남측 사람들에게 하나의 로망이자 정치이며 모험이자 도전이다. 분단조국은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기묘한 풍경을 빚어낸다. 방북(訪北)이 그 하나다. 방북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허용되고 제약이 따르고 책임이 수반된다. 방북하는 사람이 늘어 군사분계선이 희미해지고 끝내는 지워져야 통일이 될 텐데, 방북길은 여전히 멀고 가파르다.
 
삼광사 주지 무원 스님은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을 자주 들락날락한 분이다. 그동안 70여 차례를 오르내렸다던가. 이쯤되면 호가 날법한데도 군사분계선은 여전히 성가시고 까다롭다. 방북길을 더 넓힐 수 없을까. 요즘 무원 스님이 고민하는 화두다.
 
 
#통일 도량 개성 영통사

 

   
  지난 3일 열린 '영통사 복원 10주년 남북공동법회'.
지난 3일 그가 또 한번 북한을 다녀왔다. '개성 영통사 복원 10주년 기념 조국통일 기원 남북 불교도 합동법회' 봉행을 위해서였다. 이날 법회에는 대한불교천태종 총무원장 춘광 스님과 조선불교도연맹(조불련) 위원장 지성 스님을 포함해 남북 불자 120명(남측 70명, 북측 50명)이 참석했다. 개성 영통사는 무원 스님의 원력(願力)이 고스란히 녹아든 절이다. 스님은 영통사 복원의 실무책임자로서 2000년 초 남북한 간 실무협의부터 자재공급, 공사, 준공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총괄했다.
 
영통사는 고려 11대 임금인 문종의 왕자였던 대각국사 의천이 출가해 천태종을 개종한 천년 고찰. 그러나 16세기 화재로 인해 전각이 모두 소실되고 석탑과 당간지주만이 남아 있었다. 북한이 발굴사업을 거쳐 복원 계획을 수립하자 천태종은 종단 차원에서 통큰 지원을 결정했다. 2003년 10월 제1차 지원을 시작으로 천태종은 기와 46만 장과 묘목 1만 그루, 단청 등 건축 마감재, 목탁 불기 연등 촛대 향로 등 예불도구, 진입로 개설에 쓰일 중장비까지 지원했다.

 

   
  복원 책임을 맡았던 무원 스님이 북측에 '인화성사'라 적힌 서예 액자를 전달하는 모습.
우여곡절이 많았다. 남과 북의 교류는 불확실성의 연속이어서 너무 잘 나가도, 너무 드뎌도 안 된다. 지원사업이라지만 수혜자인 북한의 입장을 헤아려야 하고, 그들의 자존심도 고려해야 했다. 북한측의 관심은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세 차례나 복원 현장을 방문할 정도로 컸다고 한다.
 
무원 스님은 "처음엔 우리를 '중 선생'으로 부르던 북한 사람들이 시간이 가면서 '스님' 호칭은 물론 '합장'으로 인사를 하기도 했다"며 "탑을 쌓듯 원칙을 갖고 정성으로 다가가니 길이 열리더라"고 말했다. 공사 시작 후 2년, 2005년 10월 31일 마침내 영통사가 29개의 전각을 갖추고 깨어났다. 낙성식과 함께 남북 공동 학술토론회가 열렸는데 그것도 분단 이후 처음 갖는 행사였다. 무원 스님의 말대로 '하늘이 돕지 않으면 안됐을 일'이었다. 그후 이어진 영통사 성지순례는 10차에 걸쳐 1만여 명이 참가해 남북 민간교류의 새장을 열었고, 2007년 말 현대아산의 개성관광 사업으로 발전했다. 비슷한 시기 조계종단에서 금강산 신계사 복원 불사를 추진한 것도 시너지를 높인 계기였다. 
 
삼광사는 지난 2일부터 경내에서 영통사 복원 10주년 기념 통일기원 사진전을 열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남북교류의 궤적을 한 눈에 살필 수 있는 자리다.
 
 
#인화성사로 풀자

 

   
  삼광사 무원 스님.
이번에 북한을 다녀오면서 무원 스님은 큰 것 하나를 깨달았다고 했다. 통일 논의의 확장에 관한 것이다.
 
"2010년 나온 5·24 조치 이후 우리 정부는 남북 민간교류를 제한하는 기류예요. 대통령은 통일대박론까지 들고 나왔는데, 통일부 등 관련 부처들은 움직임이 미약해요. 이번처럼 뜻깊은 법회에도 70명밖에 못갔잖아요. 모든 교류의 바탕에는 사람이 중심입니다. 인적 교류 확대가 통일로 가는 길을 넓힌다고 봐요."
 
무원 스님은 인적 교류란 말을 몇차례 반복했다. 남북 간 경색국면을 푸는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이번 개성 방문때 무원 스님은 조불련의 지성 스님에게 자신이 직접 쓴 '인화성사(人和成事)'라는 서예 액자를 선물했다. 사람이 화합해야 일이 이루어진다!
 
같이 있던 강석환 부산관광협회 부회장이 맞장구를 친다. 강 부회장도 이번에 개성 영통사를 함께 다녀왔다.
 
"금강산이든 개성이든 길이 다시 열려 많이 갔다 와야 합니다. 무엇보다 젊은이들과 아이들의 방북이 더 많아져야죠. 북한 땅을 직접 밟아보고 느끼는 것만큼 산 통일교육이 어디 있을까요."
 
그런데 북한은 교류를 원하고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해 무원 스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적극적인 대안까지 제시한다.
 
"북한은 교류가 필요하고 내심 원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인적 교류든, 경제교류든 기회가 주어지길 은근히 바라는 거죠. 이젠 우리의 통일 논의에도 창조적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문화융합이랄까, 창조경제랄까, 통일 담론의 패러다임 전환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낡은 사고로는 안 돼요. 세상이 변하고 있잖아요."
 
한국사회에서 통일 논의의 주체 세력은 누구일까. 이 대목에선 강 부회장이 목소리를 높인다.
 
"일반 국민들이 방북 신청서 하나 내기를 주저하는 건 무엇을 의미합니까? 북한을 얘기하면, 전향적인 통일 논의를 하면 종북에 가까운가요? 정치가 주도하는 통일 논의는 외눈박이가 될 수 있어요. 정치권은 물론 학계, 문화계, NGO, 일반시민, 학생들까지 함께 나서 자유롭게 상상력을 동원해 통일 논의를 열어가야죠. 통일 논의가 특정세력의 전유물이 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교류 확대는 통일로 가는 첫걸음이다. 교류는 힘을 가질 때 가능하다. 한데 우리는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북한을 두려워한다. 강자가 교류의 문을 열고 약자는 닫으려 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상식인데, 남북관계는 거꾸로다. 반복되는 '종북 공세'도 알고 보면 일반 국민들의 '북한 두려움'을 자극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종북 공세를 순수하게 보지 못하는 이유다. 인적교류든, 문화교류든 우리가 자신감을 갖고 주도할 수 있는데도 현실은 답답하게 돌아간다. 무엇이 뒤틀려 있는 것일까. 
 
무원 스님은 "영통사 복원 사업이 하나의 방향타가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이같은 지원사업과 방북 행렬이 늘어나길 기원했다. 그러면서 무원 스님은 하드커버로 된 두툼한 논문 한권을 건넸다. '개성 영통사 복원 지원 과정에 관한 연구'란 제목의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최고위학위 논문(2009)이었다. 결론에 이런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영통사 복원은 남과 북이 대립과 힘의 분산이 아니라, 화합과 협력을 통해 힘의 응집을 보여준 기념비적인 사업이었다.'
 
똑같이 논문을 받아든 강 부회장은 "통일이 되면 통일기념관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논문"이라며 제2, 제3의 '영통사 논문'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 하는 마음으로
 
무원 스님은 남북 교류사업 외에도 하는 일이 많다. 다문화 공동체 지원 행사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돼 있고, 지난해 부산경남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대표를 맡으면서 잊혀져가는 사할린 동포 돕기에도 발벗고 나서고 있다. 몇 달 전엔 사단법인 삼광사 나눔광장을 창립해 사회적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부산진구 초읍동 백양산 자락에 들어선 삼광사는 이처럼 의미있는 사업과 활동을 실천하는 도심 사찰이다. 현재 신도수가 37만여 명으로 단일 사찰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삼광(三光)'은 부처님이 중생들에게 비추는 세 가지 빛, 즉 자비·지혜·백호(白毫)의 빛을 뜻한다고 한다. 백호는 오욕과 미움이 사라진 부처님의 맑은 기운이다. 하고 보니, 2013년 2월 무원 스님이 삼광사 주지로 취임한 후 삼광사가 통일 발원 도량으로 떠오르면서 더욱 밝아진 빛인 것도 같다.
 
무원 스님의 별명은 포대화상(包袋和尙). 넉넉한 외모에 자유로운 사고로 자비를 실천하는 모습이 중국의 포대화상과 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북한에 남한의 불교 향기를 심고 불심으로 통일의 주춧돌을 놓았다는 점에서 포대화상이 못한 일까지 해냈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무원 스님은 선문답 같은 한마디를 던졌다.

 

   
 
"다 하는 마음으로 하세요. 그렇게 하면 부처님의 가피가 다가와 운이 도와서 일이 저절로 풀릴 것입니다. 통일 과업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백양산 기슭에 땅거미가 젖어들었고 범종소리가 은은하게 퍼졌다.

부모를 하늘처럼 공경하고 예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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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의 그늘은 남들보다 낫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친족의 그늘은 시원하도다. 석가 종족은 부처를 낳았다. 석가족은 모두 나의 가지요, 잎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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